
An I AM saying of Jesus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무덤가에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고, 마르다는 슬픔에 잠겨 그를 만났으며, 마지막 날의 먼 부활만을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희망을 먼 미래에서 자신의 인격으로 끌어내셨습니다. 그는 언젠가 부활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부활과 생명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Jesus said un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John 11:25
What Jesus means by it
마르다는 죽은 자들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이라는 진실하지만 먼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끝이 자신 안에서 가까워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그는 죽음에 대한 생명이 단순히 그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바로 그런 존재임을 주장하십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육체의 죽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최종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문이 됩니다. 그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부르심으로써 이 주장을 증명하셨고, 이는 그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실 더 큰 부활의 표징입니다. 그를 붙잡는 것은 죽음이 취소할 수 없는 생명을 붙잡는 것이며, 그 생명의 근원은 무덤을 정복하신 살아계신 인격입니다.
The great I AM behind it
이스라엘의 부활에 대한 희망은 선지자들을 통해 자라났고, 그들은 죽은 자들이 깨어나고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숨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생명 자체는 오직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은 먼지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영혼을 만드신 분이며, 자신의 이름을 '나는 존재한다'고 드러내신 분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자 죽음의 주인이 되는 것은 신성한 땅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 앞에 서서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주장할 때, 그는 일반적인 위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께 부여한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위를 취하시며, 증인들 앞에서 그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How to receive him
여기서 그를 받는 것은 믿음으로, 자신의 죽음과 타인을 위한 슬픔의 무게를 무덤을 정복하신 분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개인적으로 물으셨습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그는 당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걸어야 할 신뢰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잃어버린 이들에 대한 슬픔을 그에게 가져가고, 죽음에 대한 그의 능력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신 바로 그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를 받는 것은 희망을 가지고 슬퍼하는 것이며, 생명 그 자체인 분의 손을 잡고 죽음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그가 당신의 부활이 되게 하십시오, 지금 신뢰 안에서, 그가 당신의 부활이 되는 그 날, 사실로서.
Questions people ask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는 죽음에 대한 승리가 단순히 그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바로 그런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죽음이 끝낼 수 없는 생명을 가집니다. 육체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통로가 되며, 그 생명의 근원은 무덤을 정복하신 살아계신 인격입니다. 그는 마르다의 먼 희망을 그 당시 그 앞에 서서 자신의 인격으로 끌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어떻게 증명하셨나요?
네. 그는 이 주장을 한 직후, 죽은 지 4일 된 친구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셔서 그를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 표징은 예수님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향한 예고로, 죽음에 대한 그의 권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